사랑이 한 일

만나교회 문화부 북클럽에서 이승우의 사랑이 한 일』(문학동네, 2020)을 함께 간직한다. 이 서기관 창세기에 아브라함이 이야기를 했던 다섯 편의 연작 소설로 남았다. 그 사랑이 한 일은 여섯 개의 로인데,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 다. 라고 아버지는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1,4,5,6)와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 다. 라 고 아버지는 나에게 말했다.”(2,3)라는 두 문장을 곱씹어 질문 던진다. 이 글은 아브라함의 시선이 아니라 이삭의 고백으로 다듬어져 있다. 우리가 편하게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의 입장에서 다시 읽게 하고, 성경 본문을 더 넓게 풍성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졌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를 담고 예물을 바친 것이 무슨 뜻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그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라고 아버지는 나에게 말했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그 일은 들었을 것이다.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없는 곳은 그런 일이 친구를 맺기 때문.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 면, 사랑 그대로 사랑했다면 나는 그런 요구를 받았을 것이다. 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아들을 바치라고 하는 관점에서 신이 어디를 거쳐야 하냐, 사랑하지 않는 아들을 바치라는 요구가 어떻게 시험을 거치느냐. 다스리는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인 너를 바치라고 말했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인 너를 바치라고 말했다. 이 직접 너의 이름을 죽인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나 누구를 바치는 것은 힘들지 않지만, 그래서 요구되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것이나 누구를 바치는 것은 힘들다. 그래서 요구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모 든 것은 힘든 것이다. 아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나 누구를 ‘바치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 하다. 사랑하지 않는 것을 누군가에게 주는 행위는 바치는 것이 아니라 궐이기 때문이다. 바치는 모습을 훔쳐 있더라도 그것은 바치는 것이 아니다…. 자기에게 속해 있는 것이 운데 자기보다 소중하지 않은,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나 누구를 주는 것은 자기를 주는 행위일 수 없다. 자기에게 속해 있으면서 자기보다 소중한, 소중하게 있는 것은 그가 사랑하는 것이나 누구이다. 사랑하는 것이나 누구만이, 오직 사랑만이 바쳐질 수 있다. 바치기가 가능한 것은 그 때문이다…. 자기에게 들리는 것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 자기보다 더 소 중한 것이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라고 여의던 것이다. 아버지에게 말하는 것 가운데 아버지보다 더 소중한 것이 나처럼요. 저는 저항에게 말하는 것 가운데서 가장 소중한 것이 되라는 셈입니다. 신이 바치라고 요구하면서 바치라는 요구를 받고 있었다고 한 것은 그런 뜻으로 한 말이에요. 바쳐야 할 행위를 지고 있는 바로 바치라고 하는 것을 저항이었다는 사실이 어필 게 깨달아졌을까? 저항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럽다는 사실이 어떻게 깨달아졌을까? 맞아요. 신이 원한 것은 실패하는 것이었어요. 아버지에게 불가능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저항 자신에게도 불가능해지도록 하는 것이 없는 저항에게도 그 일은 실패했던 일이었던 거예 요. 저항은 지나친 사랑 때문에 불가능해진, 그것이 되어버린 그것을 요구하는 요구를 스 스로에게 하고 있었어요. 그 자체가 과제 앞에서 고뇌하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어요 분이 아버지만은 아니었던 거예요. 저항이야말로 쩔쩔매고 있었어요….(다음 북클럽에서 함께 두서없는 서브 신형철의 역사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고안’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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