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 슬픔은 표현됨으로써 치유된다

    오늘은 종려주일이며, 이번 한 주간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건을 기념하는 고난주간으로 이어진다. 이런 시기에 윤득형의 『슬픔학 개론』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처음 듣는 ‘슬픔학’이라는 용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저자는 고등학생 시절 경찰이던 아버지가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면서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부모님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던 중, 교회 어른들이 “너를 목사를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 것을 믿고 신학대학에 진학하며, 병들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소명을 품었다. 하지만 신학대학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다. 부목사 시절 기도 중에 “네가 신학대학에 갈 때 결심한 것이 무엇이냐?”라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고, 이후 죽음 준비 교육 지도자 세미나에 참여를 계기로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하게 되었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현대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죽음을 외면하거나 먼 미래의 일로 여기며 살아간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확실한 진리는 “당신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하며, 죽음을 저 멀리 있는,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오늘을 사는 삶의 태도는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로, 예수님처럼 자기 부인의 길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말했듯이, “그리스도 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에는 그로 하여금 와서 죽으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목회자들조차도 죽음을 앞둔 이들을 위로 하거나 가족 간 화해를 돕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평소에 죽음 자체를 이야기하며 준비하도록 돕는 데는 익숙하지 않다. 평소에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막상 죽음이 닥쳤을 때 당황 하고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죽음을 성찰하며 준비한다면 오늘의 삶은 더욱 풍성해 질 것이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한국 사회가 슬픔을 숨기려는 문화가 강하다는 점이다. 저자는 “슬픔은 표현됨으로써 치유된다”고 말하며,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때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면 더 깊은 슬픔과 외로움, 공허함, 우울감에 빠질 수있다고 경고한다. 슬픔을 억누르지 말고 충분히 표현하도록 도와야 하며, 특히 슬픔을 드러내는 이들에게 ‘울지 마’, ‘힘내’ 같은 말로 감정을 억압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오히려 “마음이 많이 힘들겠구나”와 같이 공감하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또한, 울고 있는 사람에게 등을 쓰다듬거나 손을 잡는 행위는 감정의 흐름을 멈추게 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충분히 울도록 내버 려두고, 경청하면서 간간이 공감의 말을 건네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감정을 추스르고 울음이 멈춘 뒤에 손을 잡고 기도하는 것이 효과적인 위로가 될 수 있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오늘 나의 삶을 새롭게 하고, 더 애틋하게 하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
    내 삶은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가? 내가 떠난 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고난주간을 맞아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묵상하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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