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목소리

영화 “퍼팩트 월드”(1993년)를 인상 깊게 본적이 있습니다.
케빈 코스트너는 탈옥수로 어린 소년을 인질로 잡고 주 경계선을 넘으려 합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소년에게는 재앙으로 여겨지던 인질극이 실제로는 소년을 구원하는 계기가 됩니다.
코스트너는 소년을 인질로 납치했을 때 소년 (홀어머니 밑에서 가정 폭력과 잘못된 종교적 믿음을 가진 어머니, 친구들의 왕따 속에 외로운 시절을 보냄) 은 유약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비록 무의식적으로 저지르는 행위이긴 하지만 대다수의 어머니가 아들을 그런 식으로 키우려고 합니다.
어쨌든 이 영화 속의 어머니는 아들을 어린양처럼 언제나 가까이 두고 싶어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즉 길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코스트너와 아버지가 없는 소년은 점점 가까워집니다.
소년의 어머니가 소년에게 롤러코스터 곁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는 것을 알고 코스트너는 격분합니다.
그리고 다음 장면 … 소년이 시골길을 덜컹대며 달리는 스테이션 왜건의 지붕에 올라가 두 팔을 높이 치켜들고 환호합니다.
마침내 남자의 세계, 즉 위험이 있는 세계로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
이런 초대에는 “넌 해낼 수 있어! 네가 있어야 할 세계는 바로 여기야!”라는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코스트너가 소년에게 바지를 사줍니다.
하지만 소년은 코스트너 앞에서 옷을 갈아입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미소조차 지을 줄 모르는 수줍어하고 겁 많은 소년입니다.
코스트너는 무엇인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왜 그래? 내가 보는 게 창피해서 그러냐?” “… 아주 작거든요.” “뭐라고?” “아주 작다.
요. 그게요.” “누가 그러던?” 필립 테리라는 소년은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아이에게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코스트너가 끼어 들어, “어디 보자. … 벗어봐! 내가 정직하게 말해줄테니까.”라고 말합니다.
소년은 마지못해 보여줍니다.
“아니다.
필립. 네 또래 아이들에 비하면 큰 거다.
” 소년의 얼굴에 미소가 어립니다.
태양이 떠오르는 것처럼! 필립이 마침내 문턱을 넘어선 것입니다.

가령 엄마가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할 때에는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른으로 자라가면서 인생에는 수많은 난관이 있고 그 난관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난관을 많이 경험하도록 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들에게 “그래, 넌 해낼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반드시 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딸을 가진 부모에게, 딸들에게 동일하게 필요한 말입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