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 한 선배가 결혼기념일을 맞아 가족과 함께 산행을 하던 중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쓰러졌다. 곧바로 119 헬기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초기 조치가 늦어 심폐소생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 이 소식은 가족과 지인들에게 깊은 충격과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또한 어느 권사님은 폐에 물이 차서 호흡이 멈출 위기 속에서 응급실로 달려가 치료를 받으셨다. 이후 통화 중 권사님은 이렇게 고백하셨다. “숨만 쉬어도 너무 좋아요!” 이 말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호흡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주었다. 살아있음은 곧 하나님의 은혜이며 감사의 이유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죽음 직전에서 삶의 가치를 새롭게 깨달았다. 1849년 사형 직전에 극적으로 형 집행이 유예되자 그날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했다. “그날처럼 행복한 날은 없었다. 다시 살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기쁜 나머지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온종일 노래를 불렀다.”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하찮은 일과 게으름 속에 낭비했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했다. “삶은 선물이다. 삶은 매 순간이 행복이 며, 또한 영원한 행복이 될 수 있다. Si la jeunesse savait(이 사실을 젊어서 알 수만 있다 면).” 죽음을 앞두고 다시 주어진 생명은 그를 변화시켰다. 그는 시베리아 수용소의 고난조차 감사로 받아들이며 성경을 읽고, 인간의 고통과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 『죄와 벌』, 『카라 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위대한 작품들을 남겼다. 특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미짜가 재판을 앞두고 감옥에서 동생 알료사에게 “비록 태양을 볼 수 없다 해도 나는 여전히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 거기 완전한 삶이 있거든.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라고 말하는 장면은 존재 자체의 감사가 얼마나 큰 힘인지 보여준다.
살아있다는 것은 단순히 심장이 뛰고 호흡이 이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는 뜻이다. 살아 있다면 여전히 사랑할 수 있고, 화해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다. “숨만 쉬어도 감사하다”는 고백은 삶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드러낸 다. 무신론자에게는 감사할 대상이 없지만,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께 감사할 특권이 주어져 있다.
살아있음은 공동체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홀로 존재하는 개체가 아니라 그리 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다. 한 지체가 아프면 온몸이 함께 아프고, 한 지체가 회복하면 온몸이 함께 기뻐한다. 그러므로 살아있음의 감사는 곧 이웃의 생명을 돌보려는 책임으로 이어져야 한다. 결국 살아있음의 감사는 사랑으로 완성된다. 사랑하지 못한 후회가 남지 않도록, 오늘 주어진 관계 속에서 힘껏 사랑해야 한다. 살아있음은 곧 사랑할 기회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날 우리의 삶이 감사와 사랑으로 가득했다면, 그삶은 가장 충만하고 아름다운 삶이었을 것이다.
숨을 쉰다는 단순한 사실, 살아있다는 평범한 일상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그것은 매 순간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적이며 은혜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깨달았던 것처럼, 살아있음은 선물이고매 순간은 행복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삶으로 그 감사를 드러내야 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곧 희망이 있다는 것이며, 곧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도 숨 쉬는 이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있음에 감사 하는 사람으로 부름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