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해야 할 나이에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보내고 고통과 슬픔 속에서 “이제는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이후로 돈도 벌지 않고 재혼도 하지 않고 주님만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주님을 향한 헌신과 사랑을 다짐하는 성도님의 신앙고백을 들었다. 그 순간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화가 찾아왔다.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파 한 뿌리” 장면을 생각했다.
조시마 장로는 성인급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가 죽으면 시체에서 향기가 나든지, 아니면 초자연적인 기적이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의 시체에서는 악취가 나자 어떤 사람은 기뻐했고, 어떤 사람은 그가 살아온 인생이 실패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떠벌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비웃고 수군거렸다. 한편으로는 당황하며 믿음이 흔들리고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알료사는 사랑하는 조시마 장로의 인생이 매도되는 상황을 견딜 수 없어 괴로워하며 수도원을 떠났다. 그 후 알료사는 사악한 영혼을 가진 여인이라고 생각하고 피해왔던 그루센카를 만났다. 그 루센카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과거의 아픔과 고민거리를 알료사에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파한 뿌리’라는 우화를 들려주었다.
옛날 옛적에 몹시 심술 고약한 할멈이 살다가 죽었다. 그 할멈은 평생 선행이라곤 눈꼽만큼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지옥 불에 빠졌다. 할멈의 수호천사가 할멈의 선행 하나를 간신히 떠올리고 하나님께 말씀을 드렸다. “할멈이 밭에서 파한 뿌리를 뽑아서 거지에게 준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수호천사에게 “그 파한 뿌리를 지옥 불 속에 밀어서 할멈이 그걸 붙잡고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해라. 할멈이 그것을 붙잡고 빠져나오면 천국으로 가도록 하고, 파가 끊어지면 지금 있는 곳에 계속 머물게 해라”고 말씀하셨다. 천사는 할멈에게 파한 뿌리를 내밀며 붙잡고 나오라고 했다. 천사는 파를 조심스럽게 잡아당겨 할멈이 거의 다 빠져 나왔을 때 지옥 물속 다른 죄인들이 자기들도 빠져나가려고 할멈한테 매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몹시 심술 고약한 할멈은 “이건 내 파지 너희들의 파가 아니야”라고 악을 쓰며 발길질을 하는 순간 파가 뚝 끊어지고 할멈은 지옥 불에 떨어지고 말았다.
알료사는 그루센카의 아픈 상처와 연약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알료사는 그루센카에게 아주 작은 파 한 뿌리를 주었을 뿐이다.
알료사는 조시마 장로의 시신이 안치된 방으로 돌아오고, 한 신부가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의 이야기를 소리내어 읽고 있을 때, 알료사는 꿈속에서 혼인 잔치의 광경을 보게 되었다. 하객들과 젊은 신랑 신부가 보이고, 조시마 장로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자신도 파한 뿌리를 적선해서 잔치에 초대받았으며,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파한 뿌리씩 적선해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물었다.
우리가 할 일이 뭘까?… 너도 오 한 구원의 손길을 받는 한 여인에게 딱 한 뿌리를 적선했더구나, 이제 시작하거라, 사랑하는 내 아들아, 이제 네 임무를 시작해. 그런데 넌 우리의 태양이 보이니, 그분이 보이난 말이야?
조시마 장로는 알료사에게 파 한 뿌리를 나누는 일을 계속하라고 독려하며 알료사의 시선을 주님께로 향하게 하였다. 무엇인가 알료사의 가슴 속에서 불타오르고 충만되더니 그의 영혼에서 환희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알료사는 암자 밖으로 뛰쳐나가 눈물로 대지를 적시며 입을 맞추고 대지를 사랑하겠노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