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주간 동안 워싱턴 D.C.에 있는 웨슬리 신학대학원 목회학 박사과정 수업을 잘 마쳤다.
오래전에 교회의 어려움으로 포기했다가 다시작하여 마치게 되었다.
큰 비용도 들고 나이가 많은데 괜히 시작했다.
후회가 많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마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이제 과제를 제출하고 논문을 쓰는 일이 남아 있다.
교회를 떠나 있다는 것과 비행편으로 인해 토요일 밤에 돌아오게 되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잘 마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주일 김성도 목사님이 사역하는 버지니아 “열방사랑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올해 창립된 지 17년이 된 교회로 우버를 타고 40여 분을 달려갔다.
김성도 목사님은 뉴욕에서 사역하다가 건강이 나빠져 목회를 그만두었다.
그러던 중에 유학생들이 집에 찾아와서 밥을 얻어먹고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예배가 시작된 것이 교회의 시작이었다.
전통적인 예배 형식을 따라 많지 않은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는데 은혜가 되었다.
대표 기도를 맡은 집사님은 기도 중에 한동안 말을 멈추고 눈물로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 냈다.
부족하고 죄 많은 사람임에도 용서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렸다.
내가 앉아 있는 뒷자리에 있는 분도 기도가 끝난 후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봉헌 시간에 권사님이 나와서 찬양 인도를 했다.
초창기부터 찬양 인도로 예배를 시작해도 교인들이 예배 시간에 맞춰 나오지를 않았다.
그래서 목사님은 강단에 앉아 있고 권사님은 혼자 기타를 치며 찬양을 부를 때가 많았다.
그 후 찬양을 아예 봉헌 시간에 포함을 시켜 마음과 시간과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 봉헌임을 고백한 것이다.
찬양 인도를 하는 권사님은 17년 전 교회가 시작될 때 찾아온 청년으로 변함없이 교회를 섬기고 있다.
권사님은 처음에 주님 앞에서 찬양할 때의 모습을 울먹이고 고백하였다.
많은 청년이 왔다.
떠나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권사님은 끝까지 교회를 지켰다.
가까운 곳에 직장을 구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지금까지 충성하고 있다.
기도를 맡은 집사님도 권사님의 전도를 통해 청년 시절 교회에 출석하여 가정을 이루고 오늘까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작은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은혜가 있고 눈물이 있고 감사가 있었다.
예배가 끝난 후 누군가 자신을 아느냐고 물었다.
한국 만나교회에서 사역할 때 만났던 목사님과 청년이었다.
오후에 목사님이 사는 곳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가 8년 전에 췌장암 수술을 받고 5년 전부터 간경화로 고생하고 있다.
간 이식 수술받아야 하는데 건강이 너무 약해서 수술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매일매일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가려워서 온몸을 쥐어뜯고, 어느 날은 다리가 저리고 떨어져 나갈 것 같아서 옆에서 주물러 주고, 등이 아파서 두드려주어야 한다.
문제는 음식을 거의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함께 기도하고 위로해드렸다.
기독교 윤리 콜로키(Colloquy) 교수로 수고한 감리교신학대학교 김인수 교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젊은 교수님을 통해 쏟아져나오는 은혜는 거대한 물줄기와도 같았다.
장애가 있는 아이로 인해 매일매일 감당할 수 없는 큰 아픔을 겪고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고난이 한 사람을 얼마나 깊이 있고 겸손하게 만드는지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만남이었다.
그 외 많은 사람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위로와 쉼을 얻는 시간이었다.
이 귀한 것을 누릴 수 있음도 하나님의 은혜요 만나교회 성도님들의 사랑과 기도와 헌신 때문임을 기억하며, 또한 눈물의 골짜기를 함께 통과한 성도님들에게 감사했고 보고 싶은 두 주간이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