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E. 베일리는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에서 요르단의 후세인 1세 국왕의 1980년 군사 정변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이 사건을 20년 후 미국의 고위 정보 당국자를 통해 확인했다고 한다. 1980년대 초 어느 날 밤, 후세인 국왕은 비밀경찰로부터 긴급한 보고를 받았다. 약 75명 의 요르단군의 장교들이 인근 병영에 모여 왕국을 전복하고 군사 독재 정권을 세우려 한다는 정보였다. 비밀경찰은 병영을 포위하고 즉각 장교들을 체포하자고 요청했으나, 국왕은 뜻밖에도 이를 거부했다. 그리고 “내게 작은 헬기를 한 대 가져 오게”라고 말했다. 곧 헬기를 타고 병영 의 지붕 위에 착륙한 그는 조종사에게 “총소리가 들리면, 나는 놔두고 즉시 자네만 떠나게.”라고 말했다. 그런 뒤 왕은 무장하지 않은 채 홀로 두 층 계단을 내려가 장교들이 밀담을 나누고 있 는 방에 들어섰다. “제군들, 나는 오늘밤 그대들이 이곳에 모여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계획을 꾸 미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군은 분열될 것이고 나라는 내란에 빠지고 말 것이다. 무고한 국민이 수없이 희생될 것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 여기 내가 있다! 나만 죽이면 그대들의 뜻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니 딱 한 사람만 죽으면 된다.” 그 순간 장교들은 놀라 말을 잃었다가 곧 모두 일어나 왕에게 다가가 그의 손과 발에 입을 맞추며 충성을 맹세해
다. 후세인 국왕은 무력대신 철저히 약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 그는 고결하게 행동했고, 이 고결 함은 반란자들의 마음속 깊이 묻혀 있던 명예와 충성심을 일깨웠다. 베일리는 이 사건을 누가복 음 20장의 “포도원 주인과 그 아들 비유” (9-18)와 연결한다. 포도원 주인은 충분히 보복할 힘 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폭력 앞에서 철저히 약자가 되는 길 을 택했다. 이 모습은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끝내 그의 목숨을 빼앗지 않은 다윗의 고결함 (삼상 26장)과도 같다. 예수님은 자신의 자서전과 같은 이야기를 비유로 들려주셨다. “내 사랑 하는 아들을 보내야겠다. 내 아들이 있으면 그들이 부끄러워할지도 모르겠다”(눅 20:13) 포도원 주인은 종들이 폭행당하고 모욕을 당했음에도,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무장도 시키지 않은 채 홀 로 포도원으로 보냈다. 그가 바랐던 것은 난동을 부리던 소작농들의 마음속 깊이 묻혀 있던 명 예와 양심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주인은 위험을 감수하고 더 큰 손실을 무릅쓰면서도 잃어버린 고결함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랐다. 후세인 국왕은 죽음을 무릅쓴 선택을 통해 새로운 충성, 곧 부활을 얻었다. 예수님도 또한 죽음을 감수하셨으나 후세인과 달리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르며 다른 차원에서 그 일을 완성하셨다. 두 이야기는 서로 다른 결말을 맞지만 절정은 동일하다. 바 로 철저히 약자가 되는 순간이다. 그것은 자기 비움에서 비롯된 사랑의 고귀함이다. 후세인 국왕은 죽을 각오를 했고, 포도원 주인의 아들도 아버지의 종들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았다. 그 는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운명을 알고도 포도원으로 들어섰다. 결국 비유 속에서 소작농들은 주 인의 아들마저 죽였다. 그렇다면 주인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사야 5장의 “포도원의 노래’에서 예언자 이사야는 포도원의 파멸을 예언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유에서는 포도원은 파괴되지 않 고, 오히려 더 신실한 지도자에게 맡겨질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진다. 은혜는 값이 없고 풍성하 지만, 그렇다고 심판이 사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은혜는 심판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한 가지 진리를 보여준다. 진정한 권력은 힘으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철저히 약자가 되는 선택 속에서 드러난다. 그곳에서 사랑은 가장 빛나며, 그 사랑은 생명을 살 리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