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독일, 30년 전쟁과 전염병이 휩쓴 한가운데서 마틴 린카르트(Martin Rinkart, 1586~1649) 목사는 독일 작센 주의 아일렌부르크에서 사역하고 있었다. 전쟁과 전염병을 피해 성벽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굶주림과 병으로 쓰러져 갔고, 하루에도 수십 명씩 죽어 나갔다. 린 카르트는 도시의 유일한 목사로서 하루에만도 40~50명의 장례를 치렀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아내마저 전염병으로 잃었다. 그러나 그는 절망과 폐허 속에서도 기도의 언어를 놓지 않았고, 감사의 노래를 하나님께 올렸다. 그렇게 태어난 찬송이 바로 우리가 부르는 <다 감사드리 세>(Nun Danket Alle Gott)이다. 죽음과 황폐함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헤아릴 수 없는 선물”을 세어가며 노래했던 것이다. 우리의 현실 또한 린카르트의 시대와 다르지 않다. 전 쟁과 질병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의 어둠과 우울이 수많은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다. 교 회 안팎을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채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교사의 교사”라 불리는 미국의 교육가 파커 파머(Parker J. Palmer, 1939~) 역시 두 차례의 심각한 우울증을 통과했다. 30대 후반, 50대 초반에 찾아온 우울은 그의 삶을 철저히 무너뜨렸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불가능했고, 삶의 의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날 들이 이어졌다. 종교적인 언어조차 공허하게 들렸고, 그는 하루하루 죽음의 유혹과 싸워야 했다. 두 명의 정신과 의사를 만났지만, 약물에만 의존하며 환자의 내면을 살피지 않는 태도는 그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고 고립시켰다. 그러나 세 번째로 찾은 심리상담가와의 만남에서 전환점이 찾아왔다. “당신은 우울증을 당신을 망가뜨리려는 적의 손아귀로 보는 것 같군요. 그러지 말고 당신을 안전한 땅으로 내려서게 하려는 친구의 손길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반발심 이 일었지만 곱씹을수록 그 말은 진실을 품고 있었다. 신학자 폴 틸리히가 말했듯이, “하나님께 이르는 길은 위로 올라가는 승리가 아니라, 아래로 내려서는 실패와 어둠일 수도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파머는 깊은 우울에서 자신의 내면의 어둠을 정직하게 바라보았고, 그 자리를 뚫고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근원적인 사랑을 새롭게 경험했다. 그는 우울의 시기를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했다. “실패조차도 우리를 준비된 길로 이끌어주는 하나님의 방식일 수 있다.”, “진정한 리 더십은 완벽함이 아니라, 자기 한계를 드러내고 공동체 안에서 함께 배우는 것이다.” 또한 그가 가장 크게 힘을 얻은 것은 말로 설득하거나 위로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없이 그의 옆에 ‘함께 있어 준 친구’의 존재였다. 파머는 우울증이 자신이 살아온 길과 내면 깊은 곳의 목소리 사이에 괴리가 클 때 심화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우울을 통해 “타인의 기대에 맞춘 삶이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소명을 따라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우울은 결코 가벼운 고통이 아니다. 그러나 파머가 깨달은 것처럼, 그 어둠은 우리를 무너 뜨리는 적이 아니라 더 깊은 생명과 사랑으로 이끄는 손길일 수도 있다. 린카르트가 죽음 속에 서도 감사의 찬송을 올렸듯이, 파머가 우울 속에서 자신의 소명을 발견했듯이, 오늘 우리 역시 삶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을 수 있다. 이번 한 주간, 우리를 둘러싼 상 황이 어떠하든, <다 감사드리세> 찬송을 부르며 살아가자. 기쁠 때뿐 아니라 눈물과 무력감의 자리에서도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때, 그 자리가 곧 하나님의 사랑이 새롭게 피 어나는 땅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