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감사

폴 브랜드(Paul Brand, 1914-2003)는 영국의 정형외과 의사로, 인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며 평생을 헌신했다. 그는 연구와 임상을 통해 “한센병균은 오직 신경 조직만을 공격한다” 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수많은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적절한 치료만 받으면 손가 락과 발가락, 시력을 잃지 않고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통을 느끼 지 못하는 환자들은 작은 나뭇조각이나 맞지 않는 신발을 신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 곤 했다. 브랜드 박사는 “나는 고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한센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 게줄 수 있는 것 가운데, 그보다 더 훌륭한 선물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라고 고백했다. 고통 이 단순히 적이 아니라. 몸을 지키고 생명을 보호하는 하나님의 보호 장치임을 보았기 때문이 다. 만약 고통이 없다면 심장마비나 뇌졸중 같은 질병은 예고 없이 닥칠 것이다. 고통은 몸의 위기를 감지하게 만들고 치유로 이끌어 준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불의와 비극 앞에서 분노하 며, 주어진 선한 것들을 놓친다. 브랜드는 인도의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하며 가장 소외된 이들 도 만져주고 공감해줄 때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신했다. 아브라함 J. 헤 셸은 이렇게 말했다. “지극히 중요한 문제, 즉 ‘어째서 정의롭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악이 존속하도록 허용하시는가?’라는 문제는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을 도와서 그분의 공의와 사랑이 드러나게 할 것인가?’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불교는 고통을 담담히 받아들이라고 하 고, 힌두교는 전생의 업보, 즉 전생에 저지른 죄의 결과로, 이슬람은 알라의 뜻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르다. 예수님은 고통을 회피하지 않으시고 몸소 담당하셨다. 고통은 단순히 회피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세상에 사는 동안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완 화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 사랑과 정의를 실천해야 할 자리이다. 노년에 브랜드는 예 수님의 말씀을 인용해서 고백했다. “세상의 고통에서 자기 몫을 지는 자들은 복이 있다. 결국그들이 고통을 피하는 이들보다 더 많은 행복을 얻게 될 것이다.”(마 5:4, 필립스 역)

만나북클럽에서 ‘고통’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미디어는 타인의 고 통을 공감이 아니라 구경거리로 소비하게 만든다. C. S. 루이스는 “고통이란 귀먹은 세상을 불 러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이며 “만사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환상을 깨뜨리는데 도움을 주어 하나님이 반항하는 영혼의 요새 안에 진실의 깃발을 꽂을 수 있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은 “고통이란 변장한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기독교의 표준적인 답변으로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사 랑했던 조이(Joy)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처참할 정도로 자기 통제를 잃고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고통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있는 완전한 답은 없다고 절규 하며 울부짖었다. 정한욱은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에서 고통에 대해서 세 가지 사실을 말한다. 첫째, 지금 고통당하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설명이 아니라 공감과 위로이다. 둘째, 내 고통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지와 무감각을 깨우는 각성제이다. 셋째,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 감 능력이야말로 한 사람의 성숙을 보여주는 핵심적인 표지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고통의 의 미에 대해 훈계하는 대신 우리와 함께 고통당하시며 가장 깊이 공감하시는 분이시다. 오늘 우리 는 내 평안을 넘어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지금 여기서 우리가 가진 것으로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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