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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컬럼

1월 31일 “조선의 선한 사마리아인, 조선인의 친구 스크랜턴”

Author
mannala
Date
2021-01-3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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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6
독일의 선교학자인 테오 순더마이어는 서구 유럽 중심의 선교 역사를 뒤돌아본 후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였다. “서구 선교사들은 선교를 제1세계의 선교사들이 제3세계의 토착인들에게 가르치고 나눠주고 도움을 주는 역할로만 이해하고, 선교지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받고 도움을 받으며 물건을 나눠주는 대상으로 착각하였다. 선교사들은 자신을 천한 토착인과는 다른 고귀한 신분으로 이해하고, 토착인의 문화와 종교 등은 저속하거나 저급한 문화 또는 미신으로 취급해 타파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결국 선교는 토착인들과의 갈등을 유발시키고, 복음을 문화제국주의나 식민제국주의로 오해하게 만들었다.” 그는 유럽인으로서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더불어 선교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선교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서로 배우고, 서로 도우며, 서로 나누어 함께 축제하며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콘비벤츠”(Konvivenz) 선교를 제안했다. 콘비벤츠란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이란 뜻의 스페인어이다.
이 개념을 실천한 사람이 조선의 친구라고 불렸던 스크랜턴이다. 스크랜턴은 지옥과도 같은 암울한 상황에 빠진 조선의 백성들을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인도함으로 희망을 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는 예일대학과 뉴욕의대(후에 컬럼비아 의대)를 졸업, 편안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포기하고 감리교 의료선교사로 파송받아 1885년 2월 3일 어머니, 아내와 어린 딸과 함께 조선에 왔다. 선교사이자 의사, 목사, 교사. 번역자, 선교 관리자로서 22년 동안 1인 5역의 막중한 책임을 감당했다. 그가 한 일 중에 가장 위대한 일이자 스스로 선교사로서의 삶의 모토로 삼고 마지막까지 삶을 통해 보여주고자 힘썼던 것이 “선한 사마리아인 선교 명령”이었다. 그는 복음 전도를 위해 부자나 권력층보다는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으로 찾아가 시약소를 설립하여 전염병 등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며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을 추진했는데, 그것이 “선한 사마리아인 병원 기획”(Good Samaritan’s Hopital Project)이다. 그는 머리와 마음과 입으로만이 아니라 손과 발, 온 몸으로 삶을 통해 조선 사람을 섬겼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선교학 교수인 박창현은 스크랜턴의 선교를 강도만난 사람을 우리가 정하고, 우리가 ‘자비를 베푼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강도 만나 죽게 된 사람이 깨어나서 ‘이 사람이 나에게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하는, 바로 ‘칭(稱)친구’, 친구로 인정받는 선교라고 주장했다.
고아로서 남대문 숯장수 출신이었던 전덕기는 스크랜턴을 해칠 목적으로 그의 집에 돌을 던진 계기로 인연을 맺어, 일꾼으로 들어가 4년을 지내며 그 가족의 삶을 지켜보았다. 결국 전덕기는 그들의 삶에 감동을 받아 성경을 읽고 세례를 받았으며, 권사, 전도사를 거쳐 1905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상동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다. 그는 교회 안에 상동청년회를 비롯한 조직을 만들어 독립운동가들을 결집시키고, 도산 안창호와 함께 항일 비밀결사조직인 신민회를 결성하였다. 전덕기는 예수를 영접한 후 사람들에게 “나는 스크랜턴 박사님이 하라는 대로 하고 싶습니다. 박사님처럼 되고 싶을 뿐입니다”라고 고백했다. 스크랜턴의 후예로서 그리스도를 통해 강도조차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 뿐만 아니라, 강도들에게 ‘자기에게 자비를 베푼 교회, 그리스도인’이라는 칭찬을 듣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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