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개

목사님 컬럼

4월 25일 “정의(체다카)와 공의(미쉬파트)”

Author
mannala
Date
2021-04-25 19:41
Views
3448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정의) 바른 일(공의)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창 18:19)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을 부르신 목적,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사명입니다.
히브리어로 정의는 ‘체다카’이며 공의는 ‘미쉬파트’입니다. 체다카와 미쉬파트는 정의의 서로 다른 측면을 의미합니다. 미쉬파트는 공명정대하게 집행되는 법에 의해 통치되는 것입니다. 죄인은 처벌을 받고 죄 없는 사람은 풀려나고 인권은 지켜져야 합니다. 체다카는 분배에 대한 정의를 말하는 개념입니다. 체다카는 하나의 단어 안에 서로 상반되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어렵습니다. 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그가 돈을 받을 자격이 있든 없든 100파운드($139.29)를 준다고 할 때, 자격이 있다면 나의 행동은 정의로운 행위이고, 자격이 없다면 자선 행위입니다. 체다카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뜻하는 어려운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궁극적으로 세상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을 보관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대신하는 관리인에 불과한 우리는 우리의 가진 것의 일부를 궁핍한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삶의 기본 요건을 갖추며 살아야 하는데, 필요한 것보다 많이 가진 사람들은 남아도는 일부를 덜 가진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서가 꿈꾸는 세상,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삶의 모습으로 누구든지 존엄한 삶을 살아갈 기본 권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자신들이 애굽에서 겪은 가난하고 핍박받는 노예의 삶과 그 고통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을 기억했고, 공동체 안에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삶에서 배제되어서는 안된다고 여겼습니다.
신명기는 “반드시 네 손을 그 가난한 자에게 펴서 그에게 없는 것 중에서 그에게 필요한 것을 넉넉히 주라.”(신 15:8)고 말합니다. 이 구절을 랍비들은 베풂(선물)과 꾸어줌(대여)의 두 가지 의미로 읽음으로 두 종류의 빈곤에 대해 말했습니다. 하나는 “그가 필요한 것을 넉넉히 주는” 최저 생활수준의 빈곤이고, 다른 하나는 “그에게 없는 것”을 빌려주는 상대적 빈곤입니다. 가난은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 좋은 사회는 그런 수치를 겪지 않게 하는 사회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인간의 존엄을 보호하고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랍비들은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소박한 장례식을 치러주어야 한다는 규칙을 두었는데, 가난한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축제일에도 부잣집 소녀들은 좋은 옷이 “없는 소녀들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도록” 빌린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아무도 공동체의 축제에서 배제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에 힘을 썼습니다. 또한 고용인들의 기본 권리를 존중하는 노동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도 있고, 큰 어려움 없이 오히려 더 잘나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는 사람들은 항상 자신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할 뿐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마음을 쏟아 그들을 도와주며 나누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누군가를 도와주는 중에도 상대방이 인간다운 품위를 잃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조나단 색스의 『차이의 존중』을 읽으며)

4561 W Pico Blvd. Los Angeles, CA 90019 | TEL. 213.365.6191 | ©2020 LA 만나교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