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개

목사님 컬럼

10월 3일

Author
mannala
Date
2021-10-03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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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1
앙겔라 메르켈은 2005년 독일연방공화국 제8대 총리로 취임한 후 4차례 연임을 통해 16년간 총리로 재임하고 퇴임한다. 메르켈은 2018년 말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메르켈은 2015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26년 만에 여성을 선정), 2016년 포브스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 … 서구자유주의의 마지막 수호자로 불렸다. 독일인들은 메르켈을 “무티”(Mutti, 엄마)로 부르며 존경하고, 그녀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정치인 만족도 조사에서 66%가 만족한다고 응답했고, 그녀의 시대를 75%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큼 그녀의 인기는 여전하다. 메르켈의 정치 모토는 “국민의 행복을 위해 정치를 한다.”이다.
메르켈의 인생 여정은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그녀는 1954년(7월 7일) 함부르크에서 루터교회 목사인 호르스트 카스너의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가 태어난 지 몇 주 후 아버지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의 교회로 파송을 받아 동독으로 이주를 하였다. 당시 해마다 약 23만 명 이상의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탈출을 하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더 낮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는 예수님의 마음과 신앙 때문에 동독 행을 택한 것이다. 이후 1960년대 동독 사회주의 경제 안에서 유일하게 재배한 농작물이 개인 소유가 될 수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운영되던 곳인 템플린 지역에 있는 발트호프 농장으로 옮겨 정착했다. 메르켈은 이곳에서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고, 정신지체 아이들과 사귀고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 노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기독교 전통이 깊게 뿌리 내린 동독 지역에서 정부도 교회를 강제로 통제할 수 없었다. 교회는 사회주의체제에서 존재했던 자유로운 사회적 공간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위험인물로 지목되어 감시를 받았으며, 목사는 공공의 적으로 비난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 취급을 받아야 했다.
메르켈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신앙교육을 통해 획일적인 사회주의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자유로운 인격과 개성을 쌓을 수가 있었다. 교회는 그녀의 삶의 근거지였고,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배웠다. 메르켈은 “교회는 기독교 신앙이 제 삶의 모든 것이 되도록 만들었다”고 회고했고, 친구는 메르켈이 “하나님의 말씀을 엄마의 젖처럼 항상 먹었다”고 회고했다. 메르켈은 동독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 박사학위를 받고 물리학자로 활동을 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격변기에 정치에 뛰어들어 환경부 장관, 연방 하원의원, 기민당 대표 등의 요직을 거쳤다.
메르켈은 유럽 경제 위기와 시리아 난민 사태, 코로나19 등 국제적 현안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유럽의 병자’라고 불렸던 독일을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게 했으며, 자유세계의 수호자 역할을 감당했고, 코로나 19의 위기 속에 유럽을 하나로 통합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무엇보다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것은 2015년 일본 방문 중에 독일의 과거사 문제를 청산하는 방법 등을 언급하며 “항상 과거를 직시해야 한다.”며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청산하는 것이 화해의 전제라고 강조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서 그녀는 봉사와 헌신의 자세로 항상 수수하고 친근한 모습으로 국민들의 삶 속에 함께 했다.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엄격하고 정직하며 책임감을 강조하는 자세는 아버지로부터의 엄격한 신앙교육과 교회를 중심으로 한 신앙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메르켈을 떠나보내며 우리도 독실한 신앙과 겸손과 정직으로 무장한 지도자를 기대해보는 꿈을 가져본다. 자녀들이 부모의 신앙교육과 교회를 중심으로 자라서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쓰임받기를 기도하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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