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개

목사님 컬럼

9월 4일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려고 택하였다!”

Author
mannala
Date
2022-09-04 20:58
Views
1178
길거리에 있는 홈리스에게 돈을 줄 때 그의 눈을 바라보거나 함께 앉거나 이야기하지 않는다. 손을 내미는 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적은 돈을 주는 것으로 대신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긍휼은 동정과는 다르다. 긍휼은 고통을 당하는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가난하고 연약하며 고통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돌볼 때 그 사람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고 돕는 것은 그들 속에 계시는 예수님을 섬기는 것으로,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오는 것이다.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고귀한 정신이 있는데 바로 ‘환대’(Hospitality)이다. 아브라함은 어느 뜨거운 대낮에 장막 어귀에 앉아 있다가 세 명의 나그네를 보고 달려 나가서 그들을 맞이하였다. 나그네들은 과분하고 넘치는 환대를 받았고, 헤아릴 수 없는 놀라운 축복을 아브라함에게 베풀어주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공의)와 공도(정의)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창 18:19)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도록 부르셨다.
‘공의’(righteousness)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체다카’이다. 하나님과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다.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 대해서 마음을 같이 할 때 하나님은 의롭다고 인정하신다.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지 않고,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으며 비방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여기지 않고 돕는 것이다. 어려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상대의 아픔에 대해서 긍휼이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러할 때 올바른 관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정의’(justice)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미슈파트’이다. ‘재판’과 관련하여 ‘바르다’라는 의미이다. 재판을 통해 악한 사람은 ‘심판’을 받고, 억울한 사람들은 구제를 받아야 한다. 억울한 일을 겪거나 부당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재판정에 나가 호소할 때, 이웃 사람들은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그 사람을 위해 무엇이 옳고 잘못되었는지를 증언한다. 그렇게 함으로 공의를 실행하는 것이다. 재판을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외모나 지위에 흔들리지 않고, 뇌물에 유혹되지 않고 바르게 판결을 함으로 ‘정의’를 이루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그 사회는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가 되고, 사람들은 공의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의와 정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우리가 돕고자 하는 누군가는 가진 것이 없어 돌보아야 하고 불쌍히 여겨 어떤 도움을 주어야만 하는 귀찮고 성가신 존재가 아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나그네는 빈손이 아니라 주인에게 제공할 무언인가를 가지고 왔다. 환대는 하나님의 백성의 핵심 가치이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픔과 기쁨에 끊임없이 공감하고 계속해서 마음을 같이 해나가야 한다. 억울하고 부당하게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없는 정의가 사회 구석구석에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부르신 이유이며,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셔서 살아가게 하신 목적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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