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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컬럼

6월 13일 “타인을 바라보는 훈련”

Author
mannala
Date
2021-06-13 20:40
Views
3360
지난 주 며칠 동안 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아파서 견디기 힘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안과에 들렸다. 진료를 하면서 눈에 무엇인가 이물질이 박혀 있다고 하면서 밖에서 어떤 작업을 했는지 등을 물었다. 나는 그런 기억이 없어 아니라고 했다. 이물질을 제거하고 안약을 넣고 일주일을 지켜보자고 했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무실 등을 만지다가 먼지가 눈에 들어온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요즈음 들어 눈에 침침해지고 잘 보기가 어렵다.
도스토엡스키는 소설 『백치』에서 주인공 미시킨의 말을 빌어 “요즈음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곤 합니다”라고 했다. 본다는 것은 아는 것, 깨닫는 것, 더 나아가서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적인 비전까지도 담고 있다. 도스토옙스키에게 있어 본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 꿰뚫어보고 그 의미를 깨닫는 것이었다. 사람에게 있어 얼굴은 다른 신체 부위와 확연히 구별된다. 얼굴에는 사람의 육체와 정신이 공존한다. 얼굴은 한 인간의 성격뿐 아니라 교양과 도덕과 지성을 대변하는 살아있는 이미지다. 인간의 드러난 본질이 곧 얼굴이다. 그러므로 ‘나이 마흔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단순한 얼굴 피부를 가꾸는 것을 넘어서, 내면과 정신, 인격을 가꾸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나를 향한 타인의 얼굴을 제대로 응시하는 것은 그에게 가장 근원적인 윤리적인 행위다. 반대로 타인의 얼굴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못 본 척하거나, 잘 못 보거나, 얼굴을 때리거나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는 가장 사악한 행위가 된다.”고 했다. 소설 『백치』에서 주인공 미시킨만이 타인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본다. 아름답고 오만한 아글라야의 얼굴에는 고통이 서려 있다. 순수함에 대한 고결한 열망과 인간적인 질투 사이에서 그녀는 찢겨져 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미시킨은 도저히 못 본 척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만 “나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라고 말해 버린다. 미시킨은 나스타샤의 얼굴에서는 지배당하고 학대받고 짓밟히고 착취당하고 증오하고 복수하는 인간의 고통을 본다. 그래서 미시킨은 “나스타샤 필리뽀브나, 당신은 많은 보살핌이 필요해요. 내가 당신을 돌봐 드리겠어요”라고 말하며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세상에서 볼 때 주인공 미시킨은 양다리를 걸친 나쁜 놈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타인이 얼굴로서 우리에게 고통을 호소할 때 그것을 내치지 않는 것이 선이다. 그러므로 바라보기라는 관점에서 미시킨은 “그리스도를 닮은 인간”이다. 예수님께서 간음하다가 잡혀온 죄많은 여인을 바라본 눈이고, 세리와 죄인들을 바라본 눈이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이리저리 방황하는 백성들을 바라보고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신’ 예수님의 눈이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다.
우리는 미시킨처럼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백치』의 주인공 미시킨처럼은 아니지만 보는 법을 조금이라도 배울 수는 있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평생에 걸쳐 보는 훈련을 하기를 열망해본다.(석영중의 『매핑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며) 카톨릭 작가요 신비주의자였던 시몬 베유는 “시선이 구해낸다”는 말을 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불행한 사람들에게 시선이 가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청해서 불행한 사람들의 세계에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그 안에서 하나님께 시선을 돌릴 줄 알았다.
코로나로 인해 오랫동안 만날 수 없었던 성도들이 백신 접종을 통해 6월 15일 정상으로의 복귀를 선언함과 더불어 6월 20일 정상예배를 복귀할 때, 서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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